이 땅에서 50대로 산다는 것은...
봄이 왔나보다.
겨울 내 차가운 암흑의 땅 속에서 움츠렸던 복수초가 살며시 고개를 들어 다소곶이 모습을 드러내는 생명의 계절이 왔나보다.
움츠렸던 몸과 마음을 활짝 열고 자기분야에서 열심히 땀 흘리면서 서로간의 정을 나누는 시기에 나를 돌아본다.
내 나이 이제 50대 중반,
한 가정을 이끌어가는 가장으로, 사랑하는 아내의 남편으로, 대학을 다니는 두 아이의 아빠로... 출근할 직장이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는 것이 너무 무기력하고 힘이 빠지는 일상이다.
오늘도 매스컴에서 ‘정부에서 일자리 창출을 위해 어떤 사업을 펴서 몇 만명의 실업자를 구제할 것이다.’라는 정책이 쏟아져 나오고 있으나...’ 50대의 나에게는 공허한 메아리요 생색내는 구호에 불과하다.
2005년 국방부 계약직 ‘민간전문 상담관’에 선발되어 수도권의 최전방인 강화도 해병부대에서 지난해 말까지 보람된 생활을 해왔다.
힘들고 고통 받는 병사들을 위해 부모의 입장에서 상담과 지도를 하는 상담관으로 위기에 처한 병사들이 건강하게 군 생활을 하도록 노력하는 가운데 개인적으로 장차 이 나라를 이끌어갈 병사들에게 ‘자아진단을 통한 자신의 꿈’을 세울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도서벽지의 숙영지를 찾아다니며 강의도 해왔다
그러던 중 작년 연말 국방부로부터 사전에 말한 마디 없이 갑작스런 계약해지 통지서를 받게 되었다. 청천벽력 같은 편지 한 장을 받고 암울하고 분노가 치솟아 몇 년간 끊었던 담배까지 피우면서 화를 달래야 했던 암담한 시기였다.
한솥밥을 먹었던 사람이 다른 곳으로 갈 때는 서운하고 아쉬움이 남는 법인데, 하물며 어려운 여건에서 헌신한 사람을 그만두게 할 때는 사전에 알려주고 합당한 조치가 있어야 했다.
정부 부서인 국방부(해군본부, 해병대)의 납득할 수 없는 조치와 합리적이고 효율성이 결여된 운영이 내가 20여 년간 해병대 간부로 헌신한 모군에 대해서도 배신감마저 들어 다시 돌아보고 싶지 않은 상처로 남게 되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제도는 고인이 되신 노무현 대통령이 군인의 인권보호를 위해 만들어 놓은 ‘민간전문 상담관’ 제도였다. 현 정권이 들어선 이후 약화되어 금년도에 신규 상담관 30여명을 추가로 선발할 계획 이었으나, 무슨 이유로 예산이 삭감되는 바람에 국방부는 궁여지책으로 일자리 창출의 목적으로 기존의 경험과 능력이 있는 전문 상담관 30여명을 합리적인 평가 기준도 없이 해고 시켜 실업자를 만들고 새롭게 일자리 창출했다고 한다.
당시 이러한 사태를 방지하기 위하여 나는 ‘상담관제도의 발전 방안’에 대해 현장에서 근무하면서 느낀 생각을 적어 청와대, 국가 권익 위원회, 국방부, 해군본부의 최고 책임자들에게 편지를 보냈으나... 실무 책임자의 형식적인 전화와 무성의한 답신 한 통이 고작이었다.
‘나의 착각이었지...나 혼자만 국가를 생각하고 대의를 위해 힘써봐야 누가 알아주겠는가?’ 허탈한 마음으로 포기하기로 했다. 이 시대에 높은 자리에 계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직분에서 국가를 위하고 국민을 받드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이권 챙기기와 줄서기에 바쁜 그 들에게 빈약하고 힘없는 내가 소리를 낸다고 누가 눈길조차 주겠는가?
그래서 나는 우리사회가 “지혜로운 사회”가 되길 희망하면서 『새미래 뉴스』사이트를 8년 째 혼자 운영하면서 회원들에게 ‘지혜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 혼자 살아가기도 힘든데... 쓸데없이 나라를 걱정하고 사회를 생각하느냐?’고 핀잔식 소리도 자주 듣는다.
이제는 누가 뭐라 하던 내가 20여 년간 연구해 왔고 마음속 꿈으로 자리매김한 ‘은퇴자와 노인관련 분야’로 나아가기 위해 그동안 공부하며 적어 두었던 서류철과 인터넷 개인 자료실을 꼼꼼하게 챙기면서 하루를 보내고 있다.
현실적인 문제인 한 달 생활비를 벌어야 되기에 거의 날마다 새벽녘까지 몇 군데 취업 사이트를 뒤지면서 구인 정보를 찾아보고 있으나 50대를 원하는 곳은 거의 없었다.
‘나이 무관’이라고 언급한 몇 군데 회사에 문의 해보면 대부분이 이상한 영업을 하는 곳이었고, 어떤 회사(정부 기관도 마찬가지)는 1명을 선발한다고 게시는 되어 있으나 대부분 내부에서 사전에 선정 해놓고 보이기 위한 요식행위에 불과 했다.
지난 1월에는 한 가닥 희망을 갖고 ‘노사공동 재취업지원센터’와 ‘제대군인 지원센터’를 방문하여 취업 관련 특강도 듣고 컨설턴트와 상담도 해 보았다. 그 분들은 나에게 도움을 주려고 노력하고 있으나...이 사회에서 50대의 경력자를 원하는 곳은 거의 없었다.
30여년 직장 생활을 해오면서 저마다 지식과 경험이 축적되어 이제는 제대로 값진 역할을 할 때인데 마음만 조리며 한 숨을 내쉬는 우리시대의 처량한 50대 가장들…….
직장에서 나온 이들을 활용하여 생산적인 분야에서 근무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이것은 개인이나 가정의 생계유지 뿐 만 아니라 국가적으로는 인적자원을 활용하지 못하는 측면 외에도 큰 사회문제로 확대되고 있다.
오래전부터 나는 은퇴자와 노인들이 ‘개인의 역량과 적성을 진단하여 제2의 인생을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멘토’로 활동하기 위해 연구해오면서 나의 꿈을 이 분야로 설정하여 정진하고 있다.
요즘은 좀 더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이 들어 실업자 계좌제 카드로 ‘직업 상담사’ 야간 강의를 듣고 있다. 주간에는 시간이 나는 데로 ‘사회 복지사’ 공부도 하면서, 인터넷 활용 능력을 높이기 위해 서울시에서 제공하는 ‘시민 인터넷 무료교육’도 신청하여 내가 수행할 분야의 업무 능력을 키우고 있다.
누가 찾아주고 알아주지 않는 실직자 생활에서 친구의 안부문자 하나에도 가슴이 메이는 기분이다. 엊그제 모처럼 만나 술 한 잔 하며 푸념 식의로 건넨 나의 말 한마디를 잊지 않고 “상용아, 너무 기대는 하지 말고 내가 오늘 교도소 관계자한테 네가 준 꿈 강의 프로그램을 보내줬으니 다음 주 같이 만나서 구체적으로 이야기 한번 해보자”라는 친구의 다정한 전회 한 통에 기운이 솟는다.
나의 황당한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실업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국가차원에서 개발도상국과 장기간 계발협약을 체결하여 그 나라의 경제, 사회 발전을 위해 우리나라의 전문 실업자들과 장비를 파견하고, 임금은 국가에서 일단 주고 그 나라에서 생산되는 물품이나 원자재를 가공하여 재수출 하는 방법은 없을까? 이런 식의 정책이 ‘도랑치고 가재 잡는 지혜로운 정책’이 될 수 있을 텐데...
내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엉뚱하게 국가를 생각할 겨를이 있냐고 남들은 뭐라 하겠지만...
이런 저런 심난한 가운데 나는 오늘도 인터넷 사이트에서 찾아낼 어느 ‘노인종합복지관’에서 버스 기사 모집에 이메일 지원서를 보냈다. 노인 관련 일은 내가 가야할 길이고, 내가 공들인 노하우를 접목시키기 위해서는 무엇을 꺼릴 수 있겠는가?
바닥부터 다시 시작해서 내 꿈의 연결 고리를 찾아 역량을 발휘하여 전문가로서 인정을 받을 때까지... 오늘의 가시밭길을 희망의 오솔길로 생각하고 다시 한 번 도약해보자.
내 주변에는 나보다 더 힘들어 하는 사람도 많지 않은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 보다 더 힘들었던 시기도 잘 넘기지 않았던가?
나는 어려운 환경에 처한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전하는 멋진 일을 하고 있지 않은가!’
- 최 상 용, 새미래 뉴스 운영자, 지혜교육 & 심리 치유사 -
http://www.semirenews.com (새미래 뉴스)
http://src322.egloos.com (지혜 칼럼)
오 늘 박건한
바위도 그 언젠가는 돌맹이
돌맹이도 그 언젠가는 흙
흙도 그 언젠가는 먼지
바위도 마침내 먼지 되어 사라지는 날...
따져보면 바로 오늘이
그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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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기본권 전문상담관 최상용 |
최씨는 군대생활 중에서도 가장 외롭고 힘들다는 해병청룡부대의 최전방 지역인 강화지역에 배치됐다. 수도권 방어의 핵심지역이며 최북단 도서인 말도, 주문도, 볼음도, 서검도, 교동도, 석모도엔 해병대 장병들이 경계근무 중이다. 요즘은 ‘새미래 뉴스’라는 무료 웹진을 혼자 운영하면서 매일 아침 14만 명의 회원들에게 ‘지혜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주위 사람들로부터 “바쁘기만 하고 경제적으로 도움도 안 되는 일에 열심인 이유를 모르겠다. 좀더 생산적인 일을 해보는 게 어떠냐”는 충고도 듣는다며 씁쓰레한 웃음을 짓는다. 하지만 주위의 이런 따가운 시선에도 작지만 자신으로 인해 위안을 받는 사람이 있다면 기꺼이 힘을 보탤 각오라고 힘주어 말한다.
복장은 민간인이지만 최북단 도서에서 강화도 남단까지 보이지 않게 땀 흘리는 그의 모습은 ‘병사들의 아버지요, 영원한 해병119’로 불린다. 최씨는 매서운 바람이 몰아치는 서부전선의 장병들에게 훈풍을 불어넣는 전령사로 통한다. “인적 사고예방을 위해서는 초급장교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초급장교는 24시간 병사들과 함께 생활하기 때문에 관심을 기울이면 사고를 막을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글·사진 유진상 기자 등록일 2007-01-22 14:33:5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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